일단 어떤 선택지들이 있는 지 알아봤습니다. 축구계에는 많은 직업이 있지만 체육을 전공했다거나 축구계에 인맥이 있다거나 혹은 선수출신이 아니라면 진입장벽을 뚫기란 쉽지 않아보였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말이죠.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있었으므로 우선 도전한 곳은 호주였습니다. 수소문하고 구글링한 끝에 축구 코치 자격증과 심판 자격증을 땄고, 무작정 소규모 축구클럽들을 찾아가서 코치를 하고 싶다고 이력서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호주에서 소규모 축구클럽이란 정말이지 친목단체에 불과합니다. 축구 자체가 호주에서는 비인기 종목이거니와 많은 사람들의 인식에 유소년 코치는 자원봉사 내지는 용돈벌이 수준의 직장일 뿐이더군요.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언어적으로도 부족하고 경력, 실력 모두 뒤떨어지는 제가 할 수 있는 건 보조코치로서 훈련세션을 돕는 잡다한 일을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물론 보조코치 일을 하면서 언어적으로도 많이 늘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배웠고, 축구 코치라는 것이 이런 것이다라고 하는 관념도 생기고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예, 이번에도 환상과는 다른 현실을 깨닫게 되었네요.
이런 식으로는 비전이 없다고 생각한 저는 다른 옵션을 알아보게 됩니다. 한국은 선택지에 넣지 않았습니다. 저의 선입견에 불과합니다만 한국에서의 축구계는 후지고 폐쇄적이며 열악합니다. 그 곳에 저의 열정과 삶을 바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막연히 외국을 생각했지만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저희 집은 부자가 아니라 깡촌에 살았습니다. 호주 워홀을 통해 꽤 많은 수입을 벌고 있었지만 외국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유학자금을 모으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요. 더구나 살인적인 렌트값을 자랑하는 호주 멜번에서는요. 이리 저리 알아보다가 유럽 축구 강국 중 독일의 대학시스템은 외국인에게도 무료임을 알게 됐습니다. 이 때 다른 것 재지 않고 바로 쾰른체육대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독일에서 최고의 체육대학일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 스포츠에 접근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는 실기위주의 한국체대에도 회의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죠. 스포츠는 정말이지 실무와 학문의 조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부 못 하고 운동만 잘하는 사람이 체대를 간다는 편견도 정말이지 폭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의 저에게도 그런 편견이 어쩌면 제가 체대로 진학하는 걸 막았을 지도 모르겠네요.
여튼 독일로 가기로 마음 먹고 나니, 현실적인 문제가 다가왔습니다. 학비는 공짜라고 하더라도 독일어는 영어와는 달리 단 한 번도 배워본 적 없기 때문에 어학원에 다녀야만 했습니다. 독일어를 못 하는 상태에서는 독일에서 알바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최소 어학기간인 1년동안의 생활비를 벌어야만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1천만원에서 1천 2백만원정도를 학원비와 생활비, 초기정착비로 보더군요. 그래서 미친 듯이 일을 많이 하고, 돈을 아껴서 저축을 하게 됩니다. 이미 워홀 1번째 해에 벌어둔 돈은 호주 일주와 동남아 여행, 엑티비티, 축구 자격증, 강습, 독일어 과외 등으로 모두 소진한 상태라 2번째 해에 차곡차곡 돈을 모아서 이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정말 힘들었는데 이것에 관한 얘기는 차차 천천히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독일행을 결심하고 약 10개월 후, 한국에서 약 1개월의 휴가를 가지고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됩니다.
Ep.4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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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판검사는 되지 못 했지만 나름 황새 따라가려고 노력한 끝에 서울에 소재한 그저 무난한 대학교에 다니게 됐습니다. 사실 경영학과는 먹고사니즘에 입각한 선택이었지만 당시에는 팀플레이에 적합한 협동력을 지닌, 셈에 밝은 문과생으로서 완벽한 적성콜라보라는 허무맹랑한 최면을 스스로에
게 걸었었죠. 그렇게 술의 도움을 빌어 환상에서 깨어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대학 신입생 시절은 군입대로 인해 한 순간에 깨어집니다.
강원도에는 쓰레기가 하늘에서 내린다. 멧돼지가 호랑이만 하다, 나방이 팅커벨이라더라 하는 말들은 선생님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말보다 훨씬 현실에 가까웠습니다. 가끔 눈 덮인 아름다운 태백산맥을 바라보며 나는 춥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떠올리기도 했죠.
아, 참고로 저는 고등학교 때 영어를 잘 하던 친구에게 열등감에 사로 잡혀 알지도 못 하던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군대전역하고 무조건 가겠다고 호언장담한 것을 잊지 않고 시행한 사람입니다. 역시 저는 호주워킹홀리데이는 청춘의 특권, 세계를 누비는 열린 청년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호주 땅을 밟았지만 아시다시피 호주워홀 다녀온 여자랑은 결혼도 하지 마라, 제가 태어나 자란 시골보다 더 시골인 곳에서 양파나 감자를 따는 남자들, 대충 살다 인생역전을 노리고 카지노에서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더 현실인 것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런 안 좋은 시선 속에서도 저는 아름다운 자연경관도 보았고,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걸 통해서 진정 행복해 보이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보았다는 점입니다. 난생 처음 사회초년생 치고는 큰 돈도 만져보고, 반복된 회사생활에 지치다 보니 나는 누구인가, 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가 걱정이 되더군요. 다행스럽게도 곧 축구로 먹고 살면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이 스쳤고, Why not?을 외칠 수 있을만큼 젊었습니다.
----Ep.3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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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현재 독일체육대학(Deutsche Sporthochschule in Köln)에 재학중인 유학생입니다. 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만, 특별한 점이 있다면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으로서 유럽축구계에 몸 담으려고 도전한다는 점이겠네요. 저는 아직 제가 목표한 것을 이룬 것도 아니고 심지어 구체적인 진로가 결정된 것도 아니며, 특별히
다른 사람에 비해 나은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만, 누군가에게는 제가 했던 이 결정들이 살다가 마주칠 특별한 결정에 힌트 혹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라는 바람을 가지고 축구인을 향한 제 여정을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저의 유년시절은 대부분 잡초 반 잔디 반이 섞인 울퉁불퉁한 흙밭에서 껍다구(?!) 벗겨진 싸구려 축구공을 혼자 맨발로 뻥뻥 차대던 시절로 기억됩니다. 제가 살던 동네에는 그 흔하디 흔한 구멍가게도 없어 걸어서 30분을 가야 과자와 탄산음료를 맛 볼 수 있었구요, 만화책이라는 문화생활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하루 2번만 다니는 마을버스를 타고 읍내까지 나가야만 잡을 수 있었습니다. 몇 가지 기억나는 좋은 점이라곤 가을에 뒷산에 올라가면 황금이삭이 펼쳐진 평야가 눈이 시릴 정도로 시원하게 펼쳐진 평야를 볼 수 있었고, 여름에는 냇가에 가서 자맥질을 치고 미꾸라지, 붕어를 잡아다 추어탕, 매운탕 끓여먹고 했던 것들이 생각나네요. (70년대 아니고 00년대입니다ㅋㅋ) 이런 깡시골에서 저는 또래라고는 2살 많은 친누나와 3살 많은, 성장장애를 가지고 있어 운동과는 거리가 먼 키가 조금 작은 동네형, 그리고 먹는 걸 좋아하던 과체중 5살 많은 형밖에는 없었습니다. 결국 저에게 남은 놀거리라고는 키 작은 동네형의 풍부한 상상력이 동원된 동네 앞, 뒷산 트레킹(이라 쓰고 산삼찾기라고 읽는다?!혹은 피카츄 찾기......) 혹은 과체중 동네형과의 만화책보며 뒹굴거리기 등 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저는 그 동네에서는 특출난 혈기왕성함을 가졌었고 자연스럽게 맞고 뒈져라하고 뻥뻥 차대도 지치지 않는 축구공과 친해진 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것에도 쉽게 질리는 저에게 축구는 신기하게도 질리지 않는 즐거움을 안겨줬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의 아버지는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셨고 아들의 축구실력 향상에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또 다행스럽게도 저의 경쟁심과 근성은 높은 편이었고, 제 목표는 곧 아버지보다 축구를 잘하는 것이 되었죠. 그렇게 이룰 수 없는 목표를 향한 제 무모함은 저를 공 좀 차는 꼬마로 성장시켜줬지만 누구도 시골뜨기 공 좀 차는 꼬마를 축구선수로 키울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어렸을 때부터 시골농부 할아버지들로부터 인사 잘 하고 말 잘 듣는 착한 꼬마로 소문났고, 할아버지들은 항상 학생은 공부 열심히 해서 판검사 되야 한다라고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물론 전 그 자랑스런 타이틀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 Ep.2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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