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화부터 제 여정에 대해서 좀 더 디테일하게 적어볼 예정입니다. 글솜씨가 부족해 좀 지루하거나 늘어질 수도 있으니 양해부탁드립니다. 

 추위가 시작되는 10월 말, 저는 군대를 전역했습니다. 바로 학교를 복학할 수도 있었지만, 저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호언장담을 해놓았던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갈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군대에서부터 쥐꼬리만한 월급을 조금씩 모아서 약 70만원 정도를 모아서 나왔으나, 전역축하파티며 그 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다 보니 1주일만에 다 써버리고 말았죠. 그래도 서울 쪽에서 학교 친구들은 거진 모두 만났었고 이제 고향에 내려가서 고향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어렸을 때부터 같은 고향 가까운 곳에 살면서 저를 아들처럼 챙겨주셨던 친척분이 한우집을 운영하시는데 내려와서 일을 도와달라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저에겐 최상의 시나리오였습니다. 3개월 정도 후에 호주로 출국할 계획이었고 최대한 초기정착자금을 많이 모아서 갔어야 했기 때문이죠. 숙식제공이었어서 받는 월급은 거의 모조리 세이빙을 할 수 있었죠. 거기에서 머물며 고향 친구들과 간만에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던 건 덤이었죠.


 하지만 생각만큼 일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친척분이 가게의 거의 모든 운영을 한순간에 저에게 맡겨버리신 탓에 저는 군대보다도 더 빡센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제 갓 군대를 전역하고 식당운영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까까머리 군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매니저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종업원들의 반발 아닌 반발도 있었고, 식료품을 공급받는 업체들과의 가격협상과 기타 협력에 있어 나이 때문에 받는 불이익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종업원들의 정기휴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예전과는 달리 다들 이기적으로 행동했고, 저의 중재를 무시하고 저의 친척인 사장님과 직접 의논하려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저는 나름 친척분이 저를 믿고 맡기신 일인데 자꾸 일을 해결 못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종종 갈등이 생기기도 했었죠. 거래처 사장님은 너가 어려서 모르는 거다는 식으로 저에게 바가지를 씌우신 일도 종종 있고, 배송우선순위에서 자꾸 밀려나기도 했습니다. 안 그래도 일이 서툴러 주문이 잘 못 들어간 경우도 왕왕 있었는데, 일장훈계를 듣는 건 예사였습니다. 세세한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일개 직원이 아닌 매니저로서 식당을 운영해나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해보신 분들은 다들 아실겁니다. 인수인계란 건 없었고 처음부터 다 부딪히며 알아갔습니다.


 제 성격상 대충 일을 처리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매일 12시간 이상씩 3개월동안 휴일은 단 2일. 신정과 구정 등이 껴 있었지만 식당일을 하느라 쉬지 못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식당주변청소, 새벽에 배송된 식재료 점검, 창고정리하며 부족한 식재료 점검, 예약점검, 기타 무거운 물건들 옮기는 건 모두 제 몫이었습니다. 식당운영시간엔 거의 계산대에서 계산을 위주로 하고, 바쁠 때는 서빙, 정육점에서 고기손질까지 도맡아 하며 멀티플레이어로 거듭납니다. 구정 때는 500포기가 넘는 김장을 돕느라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김장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알았으면 어머니께 김치투정따위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3일을 꼬박 김장을 하고 나니 군대를 다시 가는 것만큼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되더군요. 


여튼 다사다난한 3개월을 마치고 나니 저는 식당운영을 꽤나 잘하는 젊은 요식업계의 떠오르는 샛별(?)이 되었고, 김장도 할 줄 아는 한국의 신남성이 되었으며, 소고기를 부위별로 손질할 줄도 아는 기술자가 되었고, 무엇보다도 호주로 떠날 자금을 차고 넘치게 모았습니다. 통 크게 100만원어치의 최상급 A++한우를 친척들과 가족들에게 선물로 투척하고 전 호주로 향하는 비행기티켓을 끊었습니다. 


posted by Fussball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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