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선지는 NRW 주 안에 위치한 도르트문트였습니다. 축구인들에게는 Borrusia Dortmund라는 팀으로 유명한 곳이죠. 애초에 행선지는 쾰른이었으나 독일에서 베를린, 뮌헨, 함부르크를 이어 4번째로 큰 대도시이기에 어마어마한 렌트비와 집 구하기 난이 심각했기 때문에 주변에 집값이 저렴한 도시들을 알아보다가 선택하게 됐습니다만 나중에 돌아보니 꽤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한 생활기에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따로 생각해 둔 어학코스가 있었지만 막상 현지에 와보니 제가 알던 것과 너무 상이해서 결국엔 급하게 방향을 변경했습니다. 덕분에 오자마자 거의 2달정도를 수업을 못 듣고 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여차저차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축구를 하기 위해 주변에 있는 한인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종교가 없지만 교회는 축구를 하기 위한 통로였고,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통로였습니다. 나중에 독일에 적응하고 나서는 자주 나가지는 않았지만 제가 초반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이 많이 있었네요. 독일에 처음 오신 분들은 교회나 성당에 나가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한국처럼 막 부담스럽게 성경공부를 시키거나 은근슬쩍 강요하는 것도 덜 한 것 같았습니다.


 여튼 이런 저런 일들을 거치고 어학원을 시작했고, 약 7개월만에 DSH합격증을 받아들었습니다. 저는 커리큘럼도 좋았고 영어를 꽤 유창하게 구사하는 편이라 남들에 비해 약간 빠르게 합격했습니다만, 다른 분들은 10~14개월 정도를 잡으시면 평균인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한다는 전제하에요. 약간의 운도 따라줘야 합니다. DSH는 각 지역마다 유형이 조금 상이한 편이라 각 지역에 맞게 공부하시는 게 유리한데, 보통 3~6개월 간격으로 DSH 시험을 봅니다. 다른 지역에 원정가서 시험을 봐도 되지만 교통비와 피로도, 시험 유형을 고려할 때 자신이 공부했던 지역에서 합격하는 게 제일 유리한데, DSH 시험 일정과 자신의 커리큘럼이 맞지 않으면 상당히 길어질 수도 있는게 어학인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능력과 여건을 잘 고려해서 계획을 짜야할 것 같습니다. 특히 저 같은 경우엔 체대를 입학하기 위한 실기시험도 봤어야 했기 때문에 더욱 더 계획이 필수였지 않나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안 좋은 계획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다 잘 풀리게 됐습니다. 역시 인생지사 새옹지마입니다. 


 DSH를 마치고 약 2개월의 실기 준비를 마치고 현재 1번째 학기를 다니고 있는 중입니다. 쾰른체대에서의 공부에 대해서는 아직 저도 자세히 알지 못 합니다만, 제가 배우고 있고,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로써 제 생활기의 에필로그와 서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Ep.5 부터는 다시 군대를 전역한 시점으로 돌아가 더 자세한 저의 생활내용과 정보들을 담고 오겠습니다.

posted by Fussball101
:

 

일단 어떤 선택지들이 있는 지 알아봤습니다. 축구계에는 많은 직업이 있지만 체육을 전공했다거나 축구계에 인맥이 있다거나 혹은 선수출신이 아니라면 진입장벽을 뚫기란 쉽지 않아보였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말이죠.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있었으므로 우선 도전한 곳은 호주였습니다. 수소문하고 구글링한 끝에 축구 코치 자격증과 심판 자격증을 땄고, 무작정 소규모 축구클럽들을 찾아가서 코치를 하고 싶다고 이력서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호주에서 소규모 축구클럽이란 정말이지 친목단체에 불과합니다. 축구 자체가 호주에서는 비인기 종목이거니와 많은 사람들의 인식에 유소년 코치는 자원봉사 내지는 용돈벌이 수준의 직장일 뿐이더군요.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언어적으로도 부족하고 경력, 실력 모두 뒤떨어지는 제가 할 수 있는 건 보조코치로서 훈련세션을 돕는 잡다한 일을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물론 보조코치 일을 하면서 언어적으로도 많이 늘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배웠고, 축구 코치라는 것이 이런 것이다라고 하는 관념도 생기고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예, 이번에도 환상과는 다른 현실을 깨닫게 되었네요.


 이런 식으로는 비전이 없다고 생각한 저는 다른 옵션을 알아보게 됩니다. 한국은 선택지에 넣지 않았습니다. 저의 선입견에 불과합니다만 한국에서의 축구계는 후지고 폐쇄적이며 열악합니다. 그 곳에 저의 열정과 삶을 바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막연히 외국을 생각했지만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저희 집은 부자가 아니라 깡촌에 살았습니다. 호주 워홀을 통해 꽤 많은 수입을 벌고 있었지만 외국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유학자금을 모으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요. 더구나 살인적인 렌트값을 자랑하는 호주 멜번에서는요. 이리 저리 알아보다가 유럽 축구 강국 중 독일의 대학시스템은 외국인에게도 무료임을 알게 됐습니다. 이 때 다른 것 재지 않고 바로 쾰른체육대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독일에서 최고의 체육대학일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 스포츠에 접근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는 실기위주의 한국체대에도 회의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죠. 스포츠는 정말이지 실무와 학문의 조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부 못 하고 운동만 잘하는 사람이 체대를 간다는 편견도 정말이지 폭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의 저에게도 그런 편견이 어쩌면 제가 체대로 진학하는 걸 막았을 지도 모르겠네요.


 여튼 독일로 가기로 마음 먹고 나니, 현실적인 문제가 다가왔습니다. 학비는 공짜라고 하더라도 독일어는 영어와는 달리 단 한 번도 배워본 적 없기 때문에 어학원에 다녀야만 했습니다. 독일어를 못 하는 상태에서는 독일에서 알바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최소 어학기간인 1년동안의 생활비를 벌어야만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1천만원에서 1천 2백만원정도를 학원비와 생활비, 초기정착비로 보더군요. 그래서 미친 듯이 일을 많이 하고, 돈을 아껴서 저축을 하게 됩니다. 이미 워홀 1번째 해에 벌어둔 돈은 호주 일주와 동남아 여행, 엑티비티, 축구 자격증, 강습, 독일어 과외 등으로 모두 소진한 상태라 2번째 해에 차곡차곡 돈을 모아서 이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정말 힘들었는데 이것에 관한 얘기는 차차 천천히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독일행을 결심하고 약 10개월 후, 한국에서 약 1개월의 휴가를 가지고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됩니다.


 Ep.4에 계속

posted by Fussball101
:

 

 당연하게도 판검사는 되지 못 했지만 나름 황새 따라가려고 노력한 끝에 서울에 소재한 그저 무난한 대학교에 다니게 됐습니다. 사실 경영학과는 먹고사니즘에 입각한 선택이었지만 당시에는 팀플레이에 적합한 협동력을 지닌, 셈에 밝은 문과생으로서 완벽한 적성콜라보라는 허무맹랑한 최면을 스스로에

게 걸었었죠. 그렇게 술의 도움을 빌어 환상에서 깨어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대학 신입생 시절은 군입대로 인해 한 순간에 깨어집니다. 


 강원도에는 쓰레기가 하늘에서 내린다. 멧돼지가 호랑이만 하다, 나방이 팅커벨이라더라 하는 말들은 선생님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말보다 훨씬 현실에 가까웠습니다. 가끔 눈 덮인 아름다운 태백산맥을 바라보며 나는 춥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떠올리기도 했죠. 


 아, 참고로 저는 고등학교 때 영어를 잘 하던 친구에게 열등감에 사로 잡혀 알지도 못 하던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군대전역하고 무조건 가겠다고 호언장담한 것을 잊지 않고 시행한 사람입니다. 역시 저는 호주워킹홀리데이는 청춘의 특권, 세계를 누비는 열린 청년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호주 땅을 밟았지만 아시다시피 호주워홀 다녀온 여자랑은 결혼도 하지 마라, 제가 태어나 자란 시골보다 더 시골인 곳에서 양파나 감자를 따는 남자들, 대충 살다 인생역전을 노리고 카지노에서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더 현실인 것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런 안 좋은 시선 속에서도 저는 아름다운 자연경관도 보았고,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걸 통해서 진정 행복해 보이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보았다는 점입니다. 난생 처음 사회초년생 치고는 큰 돈도 만져보고, 반복된 회사생활에 지치다 보니 나는 누구인가, 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가 걱정이 되더군요. 다행스럽게도 곧 축구로 먹고 살면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이 스쳤고, Why not?을 외칠 수 있을만큼 젊었습니다. 


----Ep.3에 계속



posted by Fussball101
:

 

 

 안녕하세요. 현재 독일체육대학(Deutsche Sporthochschule in Köln)에 재학중인 유학생입니다. 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만, 특별한 점이 있다면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으로서 유럽축구계에 몸 담으려고 도전한다는 점이겠네요. 저는 아직 제가 목표한 것을 이룬 것도 아니고 심지어 구체적인 진로가 결정된 것도 아니며, 특별히

다른 사람에 비해 나은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만, 누군가에게는 제가 했던 이 결정들이 살다가 마주칠 특별한 결정에 힌트 혹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라는 바람을 가지고 축구인을 향한 제 여정을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저의 유년시절은 대부분 잡초 반 잔디 반이 섞인 울퉁불퉁한 흙밭에서 껍다구(?!) 벗겨진 싸구려 축구공을 혼자 맨발로 뻥뻥 차대던 시절로 기억됩니다. 제가 살던 동네에는 그 흔하디 흔한 구멍가게도 없어 걸어서 30분을 가야 과자와 탄산음료를 맛 볼 수 있었구요, 만화책이라는 문화생활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하루 2번만 다니는 마을버스를 타고 읍내까지 나가야만 잡을 수 있었습니다. 몇 가지 기억나는 좋은 점이라곤 가을에 뒷산에 올라가면 황금이삭이 펼쳐진 평야가 눈이 시릴 정도로 시원하게 펼쳐진 평야를 볼 수 있었고, 여름에는 냇가에 가서 자맥질을 치고 미꾸라지, 붕어를 잡아다 추어탕, 매운탕 끓여먹고 했던 것들이 생각나네요. (70년대 아니고 00년대입니다ㅋㅋ) 이런 깡시골에서 저는 또래라고는 2살 많은 친누나와 3살 많은, 성장장애를 가지고 있어 운동과는 거리가 먼 키가 조금 작은 동네형, 그리고 먹는 걸 좋아하던 과체중 5살 많은 형밖에는 없었습니다. 결국 저에게 남은 놀거리라고는 키 작은 동네형의 풍부한 상상력이 동원된 동네 앞, 뒷산 트레킹(이라 쓰고 산삼찾기라고 읽는다?!혹은 피카츄 찾기......) 혹은 과체중 동네형과의 만화책보며 뒹굴거리기 등 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저는 그 동네에서는 특출난 혈기왕성함을 가졌었고 자연스럽게 맞고 뒈져라하고 뻥뻥 차대도 지치지 않는 축구공과 친해진 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것에도 쉽게 질리는 저에게 축구는 신기하게도 질리지 않는 즐거움을 안겨줬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의 아버지는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셨고 아들의 축구실력 향상에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또 다행스럽게도 저의 경쟁심과 근성은 높은 편이었고, 제 목표는 곧 아버지보다 축구를 잘하는 것이 되었죠. 그렇게 이룰 수 없는 목표를 향한 제 무모함은 저를 공 좀 차는 꼬마로 성장시켜줬지만 누구도 시골뜨기 공 좀 차는 꼬마를 축구선수로 키울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어렸을 때부터 시골농부 할아버지들로부터 인사 잘 하고 말 잘 듣는 착한 꼬마로 소문났고, 할아버지들은 항상 학생은 공부 열심히 해서 판검사 되야 한다라고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물론 전 그 자랑스런 타이틀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 Ep.2 에서 계속

posted by Fussball101
:
일상/근황 2016. 3. 28. 01:44

드디어 쭐라쑹을 받았습니다!!


 독일에 와서 7개월여만에 DSH를 취득하고 그 후 2개월간의 실기시험 준비, 그리고 다시 1개월여만의 기다림 끝에 쭐라쑹을 받았네요. 이제 다음 주 화요일에 가서 Einschreibung을 마치면 정식 대학생으로 등록하게 되네요.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희망의 끈을 놓고 있었어요. 1월 15일까지 지원마감이었고 저는 일단 지원을 해놓고 2월 16일에 예정된 실기시험을 볼 예정이었습니다. 일 년에 두 번 보는 시험이기 때문에 당연히 1번은 여름학기를 위한, 그리고 나머지 1번은 겨울학기를 위한 시험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저에게 지원마감기간 이전까지 모든 서류가 완벽해야 하며, 2월이나 5월에 보는 시험 모두 원칙적으로는 어떤 학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냥 자신들의 편의상 일 년에 2번 보는데 그 일정을 저렇게 짜놓은 것에 다름없는 답변에 어이가 없었지만 일개 지원자에 불과한 제가 어떻게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죠.... 독일은 시스템에 따른 행정절차가 좋지만 그 시스템 자체가 불합리한 경우에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어요.... 


 합격여부를 결정하는 심사는 총 3차례로 나눠서 치뤄지는데, Hauptverfahren, Nachrueckverfahren, Losverfahren이라고 불립니다. 첫번째는 가장 기본적인 심사이구요. 거의 대부분의 Studienplatz가 여기에서 vergeben(배분)되어집니다. 그 이후에 자리가 남는 곳이 있으면 Nachrueckverfahren에서 다시 한 번 심사를 거쳐 나눠주구요. 그리고 나서 학생들에게 등록을 하라고 합니다. 등록이 완료된 이후에 자리가 다시 한 번 남게 되면 Losverfaren에서 또 심사가 이뤄지게 되는데 제가 여기에서 합격증을 받아쥔 것이지요!! 특이한 점은 losverfahren에서는 성적순으로 뽑지 않고 순수히 추첨을 통해서 뽑게 됩니다. 전 사실 상대적으로 수능점수와 내신점수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성적순으로 뽑게 되면 자리가 날 경우 1순위가 될 확률이 높았는데 순수 추첨이라고 하니 내가 운이 그렇게 좋을 리 없어 하면서 포기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웬일!!!! 이사를 마치고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Losverfahren을 거쳐서 너에게 기회가 왔는데 너 여전히 여기 쾰른체대에서 공부하고 싶은 의사가 있니?" 전 당연히 야!!! 나튜어리히!! 나 지금 너의 전화받아서 너무 기뻐 꿈만 같아!! 라고 하니 웃으면서 그러면 이메일로 합격증을 보내줄테니 거기에 씌여 있는데로 하렴" 하고 끊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다들 이번학기에는 공부를 시작 못 하고 다음 학기부터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해 놓았었는데 이게 웬 횡재인지 모르겠어요 ㅎㅎㅎ 


posted by Fussball101
:
독일유학 2015. 11. 21. 20:10

 어렸을 적에 우연한 계기로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워낙 많이들 가고 많이 알려져 있지만 청학동 버금가는 촌에서 태어난 내츄럴 본 촌놈이 저에게는 꿈 꿀 상상조차 못 했던 외국생활을 현실로 이루어 주게 할 획기적인 방법이었죠. 고1 때 처음 알게 되었고 그 후로 막연히 군대를 갔다오자마자 가야겠다는 생각만을 하고 있었는데 군대 말년부터 정말로 준비를 해서 호주워킹홀리데이를 가게 되었어요. 마음만 일찍 먹었지 막상 군대 사지방에서 대충 검색해보고 전역하자마자 3개월 빡세게 눈코 뜰 새 없이 일만 해서 6백만원 들고 간 거라 가서도 좌충우돌 많이 했습니다만, 운이 좋게도 좋은 직장에서 일해서 돈도 많이 벌고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고 여행을 통해 좋은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완전 시골 깡촌에서 태어난 제가 선진문명을 접하니 눈 돌아가더라구요. 대학교때문에 갓 서울에 상경했을 때보다 더 심한 컬쳐쇼크를 겪었습니다. 수려한 자연환경과 나이스한 사람들, 친환경적이지만 편리한 계획도시에서의 삶,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남을 돕는 것을 미덕으로 삼으며 진정 즐기면서 사는 삶들을 옆에서 보면서 한국에서 죽도록 공부하고 일하고 스트레스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던 삶에 회의가 느껴지더라구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었지만 현실적인 벽(봉급, 사회적명예, 진입장벽 등등)에 막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 마냥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저는 축구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힘든 일상과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벗어버리고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되어 즐기는 축구문화에 한 부분이 되고 싶어요. 축구를 통해 흥분과 열정,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에 정말 흥미로워요. 저 또한 축구를 보면서, 혹은 직접하면서 행복함을 느끼구요. 저와 마찬가지로 한국에는 축구를 좋아하고 축구를 직업으로 삼고자 하는 학생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알아본 바로는 우리나라의 축구계는 너무 후진적이고 폐쇄적이며 너무 많은 희생을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전 축구전문가가 되고 싶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행복한 가정을 꾸려서 좋은 남편, 좋은 아빠 동시에 좋은 아들과 동생이자 오빠가 되고 싶습니다. 예체능을 전공으로 한다고 해서 무식할 것이라는 편견 어린 시선을 받기도 싫고(비록 제 자존감과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중요한 것이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하더라도, 그렇게 스스로 판단하는 것과 남들이 그렇게 바라보는 것 그 자체는 별개입니다.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과 부당한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의 차이라고 하겠습니다), 내가 한 노력만큼의 정당한 보수를 보장받고 싶었으며, 충분한 여가시간의 확보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으나 한국에선 정말이지 그런 축구인으로서의 미래를 그려보기 힘들었습니다. 


 아마 한국의 많은 학생들이 저와 비슷한 심정일거에요. 진심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구요. 전 이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용기내지 못 하는 게 당연하다구요.기성세대들은 진정 무엇인가 하고 싶다면 Why not?? 잃을 게 없다고 뛰어들라고 하지만, 제 생각은 아니요, 잃을 것이 많아요. 대학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워킹홀리데이를 가던 23살의 젊은이에게도 워킹홀리데이는 시간낭비라는 진심어린 조언들이 쏟아집니다. 왜 낭비일까요. 한국에선 그 시간에 토익점수를 높이고, 봉사활동을 하고(비록 이것 자체는 바람직하다할지라도, 수단으로써의 봉사활동을 의미합니다), 학점관리, 대외활동을 모두 다 '좋은 직장에의 취업'때문에 해야하기 때문이죠. 진정 하고 싶다면 뛰어들라는 말에는 그것 빼곤 나머지를 모두 희생할 각오를 하라는 의미가 기저에 깔려있습니다. 왜 그래야 하죠? 저는 사실 그것이 필수불가결한 줄로만 알았습니다. 남들은 어렵게 사는 데 너만 편하게 살려고 하느냐? 라는 의식이 당연시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지요. 제 생각엔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어요. 남들이 잘 사는 걸 인정해주고 진심으로 서로서로 도우면서 노력한다면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는데, 다들 물귀신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노력이 동반되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이루어져야 되요. 대부분의 학생들은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까지 죽을동 살동 공부했어요. 왜? 이렇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믿구요. 그렇게 모든 힘든 미션들을 완벽하게 완수했다면 행복해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런가요? 전 단호하게 아니요 라고 말할게요. 한국의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불가피한 상황이란 건 인정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이 모든 학생들에게 이루어졌던 그 잔인한 사기의 변명이 될 수는 없죠. 


 글을 쓰다보니 너무 흥분해서 다른 곳으로 새버렸네요. 여튼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나라에서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 사기였다는 것이에요. 다른 차원의 세상이 있어요. 그건 돈을 적게 벌고 많이 벌고, 선진국이고 후진국이고의 차이가 아니라 상식이 통하고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어지는 그냥 지극히 평범하디 평범한 세상이에요. 전 그 곳 중 한곳으로 온 것이구요. 


 어떤 분들은 제가 사대주의에 빠져 버렸다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지극히 한국을 좋아합니다. 우리나라만큼 좋은 곳도 없어요. 지금은 좀 애매해졌다고는 하지만 4계절이 뚜렷하고 3면이 바다라 해산물도 풍부하고 맛있는 음식이라면 한국을 따라올 곳이 없어요. 스펙타클하게(여러 면에서) 많은 즐길거리도 있구요. 사회인프라도 여타 선진국보다 뛰어나요. 편리한 삶이라면 전 미국과 한국을 최고봉으로 뽑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죠. 돈이 많아야 해요. 돈이 많을려면 상식 선에선 좋은 직장에서 돈을 많이 벌어야 되는데 저를 비롯한 이른바 '흙수저'들이 이게 가능하냐 이거에요. 가능하겠죠. 젊은 청춘 다 바쳐 가족들과의 행복한 시간, 건강, 정서, 여가 다 버리고 공부->일 만 한다면요. 하지만 저는 저런 것들이 포기해버릴만큼의 적은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지 않아서 버릴 수 없었구요. 뭐 뻔뻔하고 욕심이 많다라고 한다면 받아들일게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 가지면서 살고 있는 것을 전 봤다라고만 해둘게요.


 굳이 독일이 아니어도 되요. 전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축구고, 축구라면 유럽, 그 중 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나라인 독일에 온 것이지만 다른 분들이라면 잘 생각해보세요. 여러 나라들을 여행해봤지만 각기 다른 장점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느꼈어요. 한국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분야들도 많이 있구요. 무작정 유학 또는 이민을 가라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옵션을 가지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리저리 많이 샜지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서없이 막 쓴 글이라 나중에 수정할 수도 있고, 횡설수설한 부분도 너그러이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_꾸벅


posted by Fussball101
:
독일유학 2015. 11. 10. 22:50

 독일 유일의 공립체육전문대학인 Deutsche Sporthochschule(이하DSHS)는 1947년에 쾰른에 설립된 이후로 독일이 사회체육의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의 과학적 접근을 토대로 명실공히 유럽 최고의 체육대학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현재 약 70여개국으로부터 5000명이 넘는 학생들과 900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재직 중인 교수들의 면면도 하나같이 쟁쟁합니다. 


 비록 DSHS의 번역을 체육대학으로 하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받아들여지는 체육대학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대학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학사과정에서의 체육대학은 주로 실기적 접근이 위주인 반면에 DSHS에서는 Wissenschaft(학문)으로의 접근이 주가 됩니다. 학사과정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학과들은, Sportmanagement und kommunikation(스포츠경영과 소통), Sport und Leistung(스포츠와 능률), Sportjournalismus(스포츠언론), Sport und Gesundheit in Praevention und Therapie(스포츠와 건강의 예방과 치료)가 있는 것을 보면 단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 현지 학생들이 독일체육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보통의 한국체육대학들과는 달리 상당히 높은 수준의 아비투어(독일의 수능) 점수가 필요합니다. 


 DSHS의 학사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높은 아비투어점수 뿐만 아니라,  Sporteignungstest를 합격해야 자격이 주어집니다. 이는 체육실기시험인데요, 육상, 수영, 체조, 팀스포츠, 라켓스포츠 등등 총 20개의 종목을 시험보게 됩니다. 이 중 3Km 오래 달리기를 제외한 19가지의 종목 중 18개 이상 합격해야지 DSHS에 입학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3km 오래달리기를 불합격한 경우는, 다른 종목을 모두 통과했다 하더라도 불합격처리가 됩니다.


 이 시험은 일 년에 총 두 번 시행되는데요, 2월 중순과 5월 중순에 한 번씩 치뤄집니다. 합격할 경우 이후 3년동안 이 시험결과가 유효하게 되구요, 인근 도시인 Bochung Ruhruniversity에서 시행되는 sporteignungstest도 DSHS에서 받아들여집니다.


 시험현황을 보게 되면 매 시험마다 2~3천명의 응시자가 시험에 지원하게 되고 합격율은 총 응시자의 절반 수준에 머무른다고 합니다. 시험의 기준이 한국의 체육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이 시험에 응시하는 모집단이 기본적으로 높은 아비투어 점수를 가진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공부도 잘 하고 동시에 운동능력까지 뛰어난 학생이 그렇게 많지 않은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할만한 수준입니다. 


 시험의 세부종목과 각각의 합격기준은 DSHS의 홈페이지(http://www.dshs-koeln.de/)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지원기간은 시험일자의 약 3달전부터 열려 1달에서 2달 정도 지속되며, 응시는 마찬가지로 학교홈페이지를 통해 할 수 있습니다.


 독일 현지에서 DSHS의 실기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한 팁을 주자면, 쾰른체육대학에 한인학생회가 개설되어 있고, 다음카페도 있습니다. 이 학생회에서 재학생들이 교대로 실기시험준비에 도움을 주고 있으니 문의해보시면 좋습니다.

posted by Fussball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