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유학 2015. 11. 10. 22:50

 독일 유일의 공립체육전문대학인 Deutsche Sporthochschule(이하DSHS)는 1947년에 쾰른에 설립된 이후로 독일이 사회체육의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의 과학적 접근을 토대로 명실공히 유럽 최고의 체육대학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현재 약 70여개국으로부터 5000명이 넘는 학생들과 900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재직 중인 교수들의 면면도 하나같이 쟁쟁합니다. 


 비록 DSHS의 번역을 체육대학으로 하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받아들여지는 체육대학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대학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학사과정에서의 체육대학은 주로 실기적 접근이 위주인 반면에 DSHS에서는 Wissenschaft(학문)으로의 접근이 주가 됩니다. 학사과정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학과들은, Sportmanagement und kommunikation(스포츠경영과 소통), Sport und Leistung(스포츠와 능률), Sportjournalismus(스포츠언론), Sport und Gesundheit in Praevention und Therapie(스포츠와 건강의 예방과 치료)가 있는 것을 보면 단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 현지 학생들이 독일체육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보통의 한국체육대학들과는 달리 상당히 높은 수준의 아비투어(독일의 수능) 점수가 필요합니다. 


 DSHS의 학사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높은 아비투어점수 뿐만 아니라,  Sporteignungstest를 합격해야 자격이 주어집니다. 이는 체육실기시험인데요, 육상, 수영, 체조, 팀스포츠, 라켓스포츠 등등 총 20개의 종목을 시험보게 됩니다. 이 중 3Km 오래 달리기를 제외한 19가지의 종목 중 18개 이상 합격해야지 DSHS에 입학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3km 오래달리기를 불합격한 경우는, 다른 종목을 모두 통과했다 하더라도 불합격처리가 됩니다.


 이 시험은 일 년에 총 두 번 시행되는데요, 2월 중순과 5월 중순에 한 번씩 치뤄집니다. 합격할 경우 이후 3년동안 이 시험결과가 유효하게 되구요, 인근 도시인 Bochung Ruhruniversity에서 시행되는 sporteignungstest도 DSHS에서 받아들여집니다.


 시험현황을 보게 되면 매 시험마다 2~3천명의 응시자가 시험에 지원하게 되고 합격율은 총 응시자의 절반 수준에 머무른다고 합니다. 시험의 기준이 한국의 체육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이 시험에 응시하는 모집단이 기본적으로 높은 아비투어 점수를 가진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공부도 잘 하고 동시에 운동능력까지 뛰어난 학생이 그렇게 많지 않은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할만한 수준입니다. 


 시험의 세부종목과 각각의 합격기준은 DSHS의 홈페이지(http://www.dshs-koeln.de/)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지원기간은 시험일자의 약 3달전부터 열려 1달에서 2달 정도 지속되며, 응시는 마찬가지로 학교홈페이지를 통해 할 수 있습니다.


 독일 현지에서 DSHS의 실기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한 팁을 주자면, 쾰른체육대학에 한인학생회가 개설되어 있고, 다음카페도 있습니다. 이 학생회에서 재학생들이 교대로 실기시험준비에 도움을 주고 있으니 문의해보시면 좋습니다.

posted by Fussball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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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인인터뷰 2015. 11. 10. 22:20

(사진출처:http://www.sportetstyle.fr/article/people/a,2327,arsene-wenger-l-humaniste.html#)


 A매치 기간이 돌아왔고, 아르센 벵거는 드문 휴가를 가졌다. 런던 콜니에서, 에미레이츠에서, 훈련장에서 떨어진 곳. 니스랑 칸 사이의 어떤 소도시. 조용하고, 아담한 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조촐한 점심. 그러나 천성인지라, 축구와는 떨어질 수 없을 운명인지, 르퀴프는 벵거에게 매달렸고, 그는 자비롭게 시간을 허락했다. 벨리베의 호텔에서, 아침 10시. 전설적인 문호 스콧 피츠제럴드가 지냈던 곳이다. 아침 10시, 그는 시간을 칼같이 지킨다. '뭐?! 화보 세션이라고?' 그런 말은 없었잖아! 그러나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그는 동의한다. 침실이 옷장으로 변했고, 그는 우리가 자랑하는 패션의 선구자, 신디 산체스의 말을 고분고분히 따른다. 


 벵거는 마네킹이 되었고, 수십 번의 옷을 시도한 끝에 긴 회색 코트, 스키니진, 가죽 가방을 두른다. "두들하임의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것 같은데." 벵거가 웃는다. 두시간 동안 플래시가 터졌고, 다행히 분위기가 좋다. 호텔 직원들이 몰려나와 기념 사진을 찍었고, 인터뷰 시간이다! 벵거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는 당당하고 자신감에 차 있다. 축구로부터 정말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벵거는 인터뷰에 임한다. 단 한번도 시계를 돌아보지 않는다. 시간을 관장하는 아르센 벵거가 그 시간을 우리에게 주겠다고 결정한 이상, 그 시간은 우리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Q. 아르센, 자, 오늘 10월 9일이에요. 제가 6945라는 숫자를 대 보죠. 뭔가 마음에 와닿는게 있나요?

A. 아니, 전혀 없는데.


Q. 이건 당신이 아스날의 감독이 된지 6945일이 되었다는 소리에요. EPL 다른 19팀의 감독들의 부임 기간을 전부 다 합친것보다 많은 숫자죠. 

A. 오 그래? (웃음) 수학 꽤 잘하시는것 같은데, 기자양반, 그게 혹시 몇초인지는 아나?


Q. 간단하죠. 6945*24*3600이잖아요.

A. 맞겠지. 뭐. 하하... 하지만 그 숫자는 사실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 그저 내가 언제나 앞을 내다보고 있어야 하는 이 직업을 그만큼 오래 했다는 뜻밖에 안 된다는 거지. 감독들은 내일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이 아닌 내일을 살아. 계획적이고, 동시에 제한되어 있지. 시간과 나의 관계는 참으로 오묘해. 불안한 관계라고 할까. 언제나 시간을 상대로 싸우는 삶이니. 과거의 것은 지나간 것이니, 그쪽은 아예 무시하는 삶이기도 하고.


Q. 오 그래요? 어째서 미래가 불안감을 주죠?

A. 지각. 늦는 것. 그것들이 정말 두렵기 때문이지. 준비가 되지 않는 날이 올 까봐 두려움에 떨지. 내가 계획한 것을 전부 이룰수 없을까봐 무섭고, 그렇기에 나와 시간의 관계는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차 있어. 과거를 돌아본다? 지나온 삶을 돌아본다? 마찬가지야. 생각하는 것만으로 숨이 막힐 정도야. 게다가 내게 이젠 남은 시간보다 지나온 시간이 더 많고. 그래서 나는 최대한 과거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 그것이 시간이라는 괴물과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거든. 과거로부터는 불안함, 공포감, 죄책감밖에 찾을 수가 없어. 


Q. 그렇군요. 헌데 아르센은 조금 전에 '시간과 불안한 관계' 라 하셨는데, '내일' 도 똑같이 불안하다 하신 것으로 들리거든요.

A. 맞아, 맞아. 그렇기에 나는 최대한 현재를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어. 인간이 행복할 수 있을 때에는 지금 뿐이니까. 과거는 슬픔과 후회감을 주고, 미래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렵지. 인간은 일찍이 이걸 깨닫고 종교를 창시했어. 믿음은 내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주고 미래를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 주니까. 앞으로는 행복만이 있을 것이라 기운을 주니까. 즉 '현재' 라는 시간을 최대한 이용하라는 거지. 인간은 현명했고, 자신을 정확히 관조했기에 믿음과 종교로 버틸 수 있었어. 


Q. 오호라, 아르센, 자신이 젊었을 때 기억하십니까? 지금 벵거의 '종교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고찰' 은 아르센이 꼬꼬마일 때와는 꽤나 다른 것 같은데요. 그당시에는 기도책의 힘으로 팀의 승리를 간구하지 않으셨나요?

A. 아쉽지만 요즘은 기도책 읽어도 잘 풀리는건 아니더라. 뭐 이건 이제 내 팀이 이기려면 주님의 가호가 필요한 정도의 막장 단계는 지났다는 말이기도 하지. 


Q. 알겠습니다. 그럼 아르센이 좋아하는 현재의 이야기를 좀 할까요. 감독으로서 아르센은 자신이 선수단에게 뭔가 신비로운, 어떻게 보면 영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팀의 창조주나 마찬가지잖아요. 플레이 스타일. 전술. 그런거 말이죠.

A. 종교적인 관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다고 하지. 하지만 난 그저 안내자일 뿐.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겉으로 드러내게 도와주는 사람일 뿐이야. 내가 만들어 낸 건 아무것도 없어. 그래,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의 조력자라고나 할까. 굳이 표현하자면, 나는 낙관주의자야. 실리보단 아름다움을, 내 끊임없는 싸움은 인간 안쪽에 잠들어 있는 그 눈부심을 끌어내는 것이 목표지. 덕분에 축구판의 여러 사람들이랑 싸우기도 하고. 순진하다고? 그래,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어. 하지만 동시에 이건 내 신념이자, 나의 삶을 사는 원동력이야. 게다가 내가 맞았다는게 증명될 때도 아주 많고. 그럼 내 자신을 더욱 믿을수 있기도 하고."


Q. 하지만 항상 그런건 아니잖아요?

A. 뭐 그래. 항상 그런건 아니지. 가끔 그 눈부심을, 그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데에 끝내 실패할 떄도 있어. 물론 이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디서 잘못된 선택을 했는지 검토할 기회이기도 해.


Q. 음, 방금 우리가 아르센을 가끔 순진하다고 표현한다고 하셨는데요. 그럼 '순진하다' 보단 '이상주의자' 가 어떠십니까?

A. '죽음이라는 공포를 가지고 살아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 뿐이다.' 라고 아주 멋진 말을 해준 사람이 있었지. 이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겠어.


Q. 하지만 예술만이 '보편적인 아름다움' 의 유일한 근원이라 할 수는 없지요. 개개인의 예술과의 관계에 따라서 같은 예술작품을 두고도 누구는 감동을 받고, 누구는 공포에 사로잡힐 수 있어요. 

A. 축구는 팀 스포츠고, 나는 그 팀 스포츠의 감독이지. 인간이 같은 가치를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은 어찌 보면 마법적이야. 스포츠와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정말 아름다워지는 때지. 어찌 보면 각박해져가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불운한 인간은 자신을 짓누르는 문제를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맞서야 하는 자일지도 몰라. 

팀 스포츠는 그런 면에서 정말 특별하다고 봐. 시간을 제치고 앞서 나간다고 할까. 열한 개의 나라에서 온 열한 명의 선수들이 하나로 뭉쳐 예술을 이룩하는 거야.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내일의 세계를 스포츠를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는 거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그 환상적인 열기와 감정을 공유할 수 있어. 이런 것이 아직 불가능한 현대 사회에서, 이런 것이야말로 마법 아니겠어? 게다가 축구뿐만이 아냐. 테니스가 데이비스 컵으로 변하는 순간 개인적인 스포츠라는 경계를 뛰어넘지. 골프가 라이더 컵으로 변하는 것도 마찬가지야. 말이 필요 없어지고 모두가 그 맥박을 느끼기 시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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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흠, 혹시 테니스나 골프 같은 개인 스포츠 감독이 된 자신을 상상해 보실수 있나요?

A. 아니, 음, 안돼. 물론 흥미야 있어. 한 명의 인간, 무엇이 그를 지탱하는가? 그 사람은 무엇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가? 아주 흥미로운 주제지만, 나는 팀 스포츠 환경에서 자라왔고, 내 사고 방식도 그쪽으로 이미 굳어 버렸지. 단 한명의 외로운 선수를 감독하는 것...으음, 꽤나 답답한 일일지도 몰라. 자라온 환경이 그쪽으론 인연이 없거든. 내 어릴적 마을에서는 축구나 농구밖에 안 했고.


Q. 실례지만, 벵거는 축구 선수였지요. 하지만 그렇게 뛰어난 선수는 아니였어요. 이 경험이 도움이 된다고 보십니까? 팀의 현재와 가능성을 살필 때 더 신중하거나 더 침착하거나, 그런 거요.

물론. 감독 아르센 벵거뿐만이 아니라 모든 축구선수와 축구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야. 선수가 바라는 목표가 있는데 도달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얼마나 좌절할까? 하지만 내 자신을 말하자면, 난 축구계에 남았을 꺼야. 내 커리어에 어떤 일이 생겼던 간에. 축구는 내게 전부였어. 다른걸 생각할 것도 없었지. 어떻게 보면 미쳤을 정도로 전부였어. 

부끄러운 과거가 하나 있는데. 내가 24살이였던가, 25살이였던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 '내가 만약 축구를 하지 못한다면 자살하겠어!' 라고. 그리고 내게 묻곤 했었지. '축구 말고 인생의 의미가 있을까??'


Q. 뭐요? 진심으로요?

A. 진짜야. 후후, 나중에 와선 내가 어찌 그리 멍청했을수 있는지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해봤지. 하지만 변명이 없는건 아냐. 난 레스토랑이랑 술집을 겸하는 집에서 자라났는데, 우리 집은 또 마을 축구팀 본부였거든. 축구말고 이야기 한 것이 없었어. 할 것도 없었고. 수요일이나 목요일쯤 우르르 몰려와서 일요일 출전할 라인업을 짜곤 했지. 난 걷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축구를 보고 있었어, 축구를 듣고 있었지. 걷기도 전에 이런 생각을 했었어. '와, 또 저 사람이 레프트윙인가.. 이기는건 포기해야지'

 
Q. 재밌네요. 혹시 어릴 때부터 그런 논쟁에 참여하셨었나요?

A. 물론. 4살인가 5살인가부터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 9살인가부턴 나도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지. 이런 것들 덕분에 난 축구가 인생보다 더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라왔어. 그거 말곤 듣고 말할 것이 없었으니까.


Q. 그렇군요. 잠깐 24살인가 25살인가 그 자살충동인가로 돌아가서. 어떻게 그걸 극복하셨나요?

A. 서서히 변했지, 모든 게. 25살인가 26살인가, 뮬하우스에 스탭진중 한명이였던 친구랑 같이 회의에 간 적이 있었어. 그때 친구가 내게 코치들을 훈련시켜 보면 어떻겠냐고 물어 보더라고.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변했지. 그러다가 어느날 스트라스부르크의 감독이였던 맥스 힐트가 내게 이렇게 말한거야. "너! 나랑 아카데미에 가자!"

그래서 갔고, 힐트 감독의 보좌관이 되었지. 그리고 힐트는 1군 감독이 되었고, 난 30살인가에 유스팀 총괄감독이 되었어. 32살이 되었을 땐 필드 위에서 뛰는건 이미 포기하고 그것에만 신경을 쏟고 있었지. 그 다음부턴 빠르게 변했어. 너무 바빠서 내 존재의의에 대한 질문 같은건 할 시간도 없었거든. 열망이 현실과 타협했다고 해야 하나. 축구를 평생동안 할수 있는것도 아니라는걸 잘 알았으니까.


Q. 그럼, 아르센, 지금 혹시 그 또 한번의 작은 죽음에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감독 생활이 끝나는 것 말이에요. 벌써 66세잖아요.

미안 이런 문제는 넘어가겠어. 그래, 일부러 무시하는 거야. 난 뭐랄까, 34살이면서 여전히 현역으로 뛰는 선수 같은 거지. 내가 아주 나쁜 활약을 보였어. 사람들은 "어, 은퇴하는게 어때." 라고 하겠지? 하지만 그 34살의 선수는 그걸 의식하지 않고 싶어 할 테고. 난 내가 감독 이후에 뭘 할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 솔직히 말해서 정말 엄청난 충격일 테니까. 내가 선수에서 감독으로 변한 것보다 더 큰 충격 말이야. 

그 변화는 말이야, 뛰다가 서는 것, 열정과 열망이 있는 삶에서 완전한 공허로 떨어지는 것이야. 그래서 생각하기도 싫어. 달리기 선수로 말하면 난 결승점에 멀지 않았지. 하지만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어. 앞에 보이는 벽은 일부러 무시하는 거지. 

자, 에릭 기자. 내가 질문을 한번 해 볼까. 자네가 살 날이 딱 24시간 남았다고 생각해 보자고. 그럼 24시간 후에 자네의 목을 잘라낼 칼날에 대해 생각하겠나, 아니면 남은 시간을 최대한 즐기려 노력하겠나? 감독 생활의 끝이란 이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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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기서 알렉스 퍼거슨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군요. 언제까지나 맨유에 있을 것 같았는데, 아내가 부탁하자 순식간에 그만뒀잖아요. 71세의 나이에. 이것을 보고 뭔가 느끼는게 있나요?

A. 물론. 퍼거슨은 대단한 사람이지. 내게 본보기이기도 하고. 일단 퍼거슨은 말야, 절때 멈추지 않는 사람이였어. 성공을 거둔 다음 안주하는 법을 모르던 사람이였지. 항상 진화하고, 항상 나아가고. 정말 부럽기도 하고 본받고 싶은 삶이라고 할까. 언제나 도전하던 사람이였어. 거의 본능적인 면이 없다고는 할수 없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영감은 다른 취미도 있었어. 경마라던가. 난 영감의 레드 와인 지식을 따라갈 수 없지. 얼마 전에 퍼거슨을 만났는데, 그때 이렇게 물어 봤지. "이봐, 알렉스. 축구 그립지 않아?" 뭐라고 했는지 알아? "아니, 전혀." 라고 했어. 실망스러웠지만, 동시에 위안이 되기도 하더라. 내게도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니. 


Q. 그럼 벵거는 다른 취미가 없나요?

A. 아니, 전혀. 그래서 더욱 불안한 거야. 난 퍼거슨이 아냐. 축구를 떠나면 대체할 것이 없고, 과거를 돌아보는 것 또한 잘하지 못하지. 내가 자서전을 쓰는 모습을 상상할 수도 없는데. 은퇴한 선수들이 자주 날 만나러 찾아오는데, 행복해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언제나 그는 사람들에게 "이분은 X씨, 과거의 아스날 선수란다!" 라고 소개되는 삶, 그것에 무슨 즐거움이 있을까? 얼마나 괴로울까? 내가 현재의 나가 아닌 과거의 나로 받아들여지는 삶은 축복이 아닌 저주야. 고통이야. 그래서 가끔, 정말 가끔 아스날 감독 이후의 삶을 생각할 때, 나는 내가 '과거의 아스날 감독' 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면 하고 생각해. 유스팀 코치라던가, 하다못해 동네 축구 선생이라던가. 뭔가 쓸모가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었으면.


Q. 음,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하셨죠. 혹시 왜인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A. 사실 조금 걱정스럽기도 하지. 만약 자네가 내 집에 찾아온다면, 여기가 축구 감독의 집이라곤 상상도 할수 없을껄. 작년 FA컵 우승 메달도 어딨는지 모르겠어. 팀닥터나 유니폼 관리자에게 줘 버린것 같은데.


Q. 호오..유구한 역사를 가진 클럽의 감독으로부터 나오는 말이라곤 꽤나 모순적인데요.

A. 나는 말이야,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역사에는 아주 관심이 많아. 반대로 내 역사는 조금도 흥미롭지 않지. 왜냐면 나는 돌아보지 않아. 동시에 내가 저질렀던 과거의 잘못들 또한 무시할 수 있지. 죄책감도 덜해지고.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중 어떤 사람들은 인생의 후반기에 자기 자신의 박물관에 틀어박혀 자기가 해온 위대한 일들으을 돌아보곤 하지. 솔직히 말해 조금 애처롭다고 생각해. 한심하기도 하고.


Q. 이럴 수가, 그럼 아르센이 떠나고 난 후 누가 당신을 기억하겠어요? 

A. 일단 내 클럽이야 날 기억해 주겠지. 그리고 언론도. 오, 오늘날의 언론이란. 모든 것을 부풀리는 자네들 같은 사람들 덕분에 내 이름은 영원불멸할껄. 내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말이야. 그리고..그래. 아버지는 떠나는 날까지 내 이름이 들어간 기사란 기사는 모조리 스크랩하셨지. 가끔가다 죄책감이 들기도 했어. 왜냐면 난 그런 것들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거든. 뭐, 앞으로 바뀔 지도 모르지. 혹시 알아? 어느날 이런 생각이 들지. "자, 아르센. 시간이 왔다. 이제 모든걸 멈추고 과거를 돌아볼 시간이야." 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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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렇군요. 그리고 또 다른 방법으로 아르센의 유산을 남긴다면...예로 다른 사람들에게 아르센의 경험을 이야기 해준다던가, 어때요?

A. 아아, 그렇지. 내 직업에서 가장 아름다운 점은 내가 이룩한 것들을 다음에 올 사람들에게 남길 수 있다는 거야. 사람들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물론 좋은 면에서. 


Q. 그럼 조금 재밌는 질문. 누가 아르센의 동상을 세운다면 어떨까요? 알렉스 퍼거슨 경이나 티에리 앙리처럼. 죽은 사람만 동상을 받는건 아니니.

A. 조금 불편할것 같네. 난 그런 것 보단 내가 이룩한 것들이 그렇게 형편없는 것은 아니였다- 라는 평가를 받도록 매일매일 노력하는게 더 좋다고 생각해. 오늘날 감독들은 시도때도없이 사형대에 서지. 달라진 것은 단 하나, 이제까지 우리가 이룩한 것들이 더이상 오늘의 평가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우린 노력하고, 존중을 받기 위해 싸워 나가지.


Q. 그럼 오늘날 축구 감독들에겐 납득시키는 것이 이기는 것 보다 어렵다고 생각하십니까?

A. 이기려면 납득시켜야지. 사회는 수직에서 수평으로 변했어. 1960년의 감독들은 '자, 이렇게 한다' 라고만 말하면 됐지.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어. 하지만 오늘 감독은 먼저 사람들을 납득시켜야 해. 선수들도. 축구 선수는 부자고. 부자의 특징은 납득해야 한다는 거지. 왜냐면 부자에겐 사회적 지위가 있고, 자기만의 사고 방식이 있어. 관중도 마찬가지야. 오늘날의 대중은 똑똑해. 온갖 정보를 얻을 수 있어. 그래서 대중은 의견을 내고, 자신들의 의견이 옳은 것이라 생각하지. 나와 다를 수도 있어. 그렇다면 나는 그들을 납득시켜야 하지.


Q. 그렇죠. 벵거야말로 잘 알겠죠. 아스날에 처음 오셨을떄 클럽과 팬들이 아르센 벵거를 믿도록 납득시켜야 했을 테니까요. 시간이 좀 걸리셨죠?

A. 이봐, 아스날은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전통으로 삼는 클럽이라고?


Q. 그렇겠죠. 그야 당신과 당시 아스날 부회장이자 아르센의 둘도 없는 친구인 데이빗 다인이 클럽을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잖아요.

A. 그것뿐만이 아냐. 아스날은 나를 따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어. 진정한 용기라고 볼수 있지.


Q. 그렇네요. 그리고 아스날은 벵거에게 시간을 좀 주기도 했죠, 그렇죠? 이제 20년째고. 

A. 그런가. 시간은 진정한 사치품이야. 내가 한가지 잘한것이 있다면, 아스날을 내 몸같이, 마치 내 것인 것처럼 여겨왔다는 것이야. 물론 이걸로 욕을 먹기도 했어. 왜냐면 벵거는 짠돌이니까. 벵거는 모험을 두려워하니까. 하지만 난 내 가치와 신념을 지키고, 이걸 클럽에 반영하고, 이걸 지키도록 싸워 왔다는 점에서 내게 점수를 좀 주고 싶어. 물론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해. 하지만 내가 떠날 날이 오면, 나는 좋은 팀을, 건전한 재정을, 앞으로도 밝은 미래가 기다리는 클럽을 남기고 떠날 꺼야. 그것만은 자신할 수 있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 

이렇게 말할수도 있었어. '좋아, 이 클럽에서 난 한 4년? 5년? 그정도 있겠지. 이동안 이길수 있는건 다 이기자. 떠날 때가 되면 클럽은 파산 직전이겠지만 알게 뭐람.'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내게 진정한 빅클럽이란 꾸준히 최고 수준에서 활약하는 클럽이야. 예로 레알 마드리드는 1952년 디 스테파뇨가 오기 전까지 21년동안 우승하지 못했잖아?


Q. 벵거, 오늘날 레알 마드리드에선 우승을 하고도 경질될 수 있어요.

A. 왜냐면 레알은 현대라는 덫에 빠져들었기 때문이야. 새로운 얼굴이 필요해. 언론 1면에 중독된 거야. 내 생각으론, 꾸준한 활약은 클럽 내부에서의 결속에서 나오는 거야. 항상 모든걸 집어 던지고 새걸 가져오는건 클럽이 무한대의 자금을 가지고 있을 때나 가능한 거지. 그게 없으면 그걸로 클럽은 사라지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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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흠, 꾸준함과 차분함이라. 죄송하지만 아르센이 모나코 감독일때는 딱히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요.

A. 성숙해진 거야. 일본으로 갔잖아. 내 자신을 컨트롤하는 법을 배웠고. 당시 난 예민했어. 어떻게 보면 과도하게. 다행이 나는 발전했고. 정식 감독을 시작했을 때가 33살이였는데 이젠 66살이잖아. 살아남기 위해 나는 적응해야 했어.


Q. 적응하지 못했다면 건강을 해쳤을까요?

A. 딱히 그럴것 같진 않은데. 물론 당시 나는 감독을 위해선 내 건강이야 무시해도 된다!!는 바보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 하지만 적응하지 못했다면 이 바닥에 남아있을 수 없었겠지. 경기 후 내가 클럽에 얼마나 큰 데미지를 줄수 있는지 겨우 깨달았거든.


Q. 음,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하니, 일본에서 나고야 그램퍼스를 감독하신 경험이 꽤나 뜻깊으셨던 것 같네요.

A. 당시 나고야 회장 토요다 쇼이치로씨가 내게 뭐라고 했는지 알아? 나고야를 일본 최고로, 세계 최고의 클럽으로 만들겠대...100년 내에 말야. 웃기게 들리겠지만 그걸 듣는 순간 압박감이 쫙 사라졌지. 100년 후를 바라보는 클럽에게 오늘의 패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하, 내 압박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였겠지. 정말 친절하다 생각했어. 그렇게 생각하니, 역사를 달리는 클럽의 한 부분이 되는 거야. 앞으로 나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의 일부분이 된 거지. 나보다 훨씬 큰, 나보다 훨씬 중요한 것의 일부분이 된 느낌이였지.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세대가 지난 후의 세계는 멈출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어. 그건 인류가 아냐. 과학주의가 진하게 뭍어나는 생각이기도 하지. 언제나 발전하는 인류의 운명을 짊어진 자. 아쉽게도 오늘날 대부분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고.


Q. 꽤나 많은 사람이 이의를 제기할 의견인데요, 아르센. 

A. 사실 나고야도 이의를 제기했어 (웃음). 아쉽게도 내가 떠난 이후로도 그다지 큰 발전은 이루지 못했지. 하지만 이제 겨우 12년이 지났을 뿐이고, 나고야가 세계 최고가 되기까지는 88년이라는 세월이 남아 있으니까. 얼마 전에 토요다 회장이 복귀했던데. 내게 자주 와서 조언을 구하고 해. 자주라는건 매달이란 소리야. 아직도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고.


Q. 아르센, 아까 화보 촬영을 위해 옷 갈아입고 있을때, 문득 루체스쿠 감독이 아르센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생각났어요. 아시죠? 샤흐타르 도네츠크 감독. 이렇게 말했었죠. "아르센은 귀족이다. 그는 알렉스 퍼거슨같은 노동자도, 주제 무리뉴같은 공격적인 사람도 아니다. 그 무엇보다 앞서 그는 가르치려고 한다." 이게 정말 아르센을 정확히 표현한 것이라 생각하나요?

A. 내가 교육자란 것은 부정할 수 없겠어. 하지만 동시에 난 귀족이 아냐. 내가 어렸을때 똥 퍼서 농장에 가져다 나르는걸 자네가 봤다면 이해했을 텐데. 난 그저 내 신념을 지키고, 타인을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뿐이야. 30년 감독인생 동안 난 단 한번도 내 이상을 선수들에게 강제로 주입하지 않았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왜냐면 우리같은 팀이 많은 건 아니거든. 


Q. 귀족적인 것은 굳이 혈통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사람의 분위기, 자세 등에서도 느낄수 있는 거잖아요.

A. 다른 사람이 내게 느끼는 것을 굳이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난 아직도 날 두들하임에서 온 촌뜨기 같다고 생각해. 맨날 벌판에서 뛰어다니던. 게다가 우리 프랑스는 귀족 머가리 자르는데 일가견이 있는 국가 아니던가. 난 신념과 가치를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파하는걸 중요시하지, 특권을 혈통으로 넘기는 데에는 관심이 없어. 

죽은 자나 그들의 가치를 중요시하지 않는 문명은 멸망을 선고받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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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촌뜨기, 촌뜨기라. 하지만 잉글랜드에서 지내는 아르센은 농부 옷을 입고 있지 않던데요. 오히려 경기 당일날 벤치에서 보면 완벽 그 자체잖아요. 

A. 왜냐면 나는 축구의 이미지에 일정 부분 책임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또한 우리 클럽의 이미지도. 또한 내게 축구는 축제야. 내가 자라난 마을에선 일요일날 좋은 옷을 입었지. 축제였으니까. 잉글랜드 오니까 모든 감독이 양복과 넥타이를 매고 있던데. 환상적이였지. 마치 선수들에게 "좋아 이놈들아, 오늘 축제를 여는 거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마음에 들어서 바로 따르기 시작했어. 난 경기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좋아, 오늘은 아스날 경기다. 좋은 시간이 되겠어.' 라고 생각하고 싶거든. 

생각해 봐. 매일 일어나면서 '오늘은 좋은 일이 있을 꺼야' 하고 생각하는 사람 말야. 나도 다르지 않거든. 그리고 클럽은 큰 야망이 있어. 멋진 축제를 벌이겠다는 야망 말이야. 그 즐거움, 그 열정, 그 환상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거야. 가끔 그러지 못할 때도 있긴 하지. 씁쓸하게도.


Q. 에미레이츠에서의 '좋은 날'과 과거 하이버리에서의 '좋은 날', 차이점이 있나요? 

A. 기대감이 엄청나게 중요해져 버렸지. '행복' 의 철학적인 뜻은, '내가 원하는 것' 과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이 나란히 늘어설 때야.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고, '내가 원하는 것' 은 내가 그 원하던 것을 가지는 순간 다른 것으로 바뀌어 버리지. 더 멀리, 더 높이. 더이상 그 소망을 충족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스날의 팬을 예로 들어 보자. 4위로 끝나면 그는 자네에게 이렇게 말해줄 꺼야. "아오, 20년동안 빅4였는데, 이제 우승할때 되지 않았나!" 

사실 우리 팬들은 맨체스터 시티와 첼시가 3, 4억 파운드씩을 쏟아 부었다는것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 그저 이기기를 원하지. 2년 연속으로 15위로 끝났다면 4위로 끝남에도 축제일 것인데. 


Q. 하지만 팬들만이 조급한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티에리 앙리도 '아스날은 꼭 우승해야 한다' 라고 말했는걸요. 이번 시즌에 말이죠. 

A. '꼭' 이라. '꼭' 은 죽음에나 어울리는 말이야. 우린 살아가면서 '꼭' 한 번은 죽어야 할 테니. 개인적인 소망이라면 '꼭' 을 '원한다' 로 바꾸고 싶어. 우승하길 원한다, 정도로. 꼭 해야하는 것 보다 원하는 것으로. 만약 자네가 내게 아르센, 오늘 저녁 꼭 나오셔야 합니다. 라고 말하면 난 벌써 나가기 싫어지는걸. 하지만 자네가 아르센, 오늘 저녁에 만나는게 어떻겠습니까? 하면 물론이지! 라고 하겠지. 인생은 족쇄에 얽혀 사는 것이 아니야. 꼭, 꼭, 꼭... 인간이 살아가면서 '꼭' 해야 하는게 과연 있을까. 


Q. 모든 사람들이 아르센의 의견에 동의한다면야 말이죠.

A. 스포츠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뭐라고 생각하나? 내게 그건 모두가 이기길 원하지만, 진정한 승자는 한명 뿐이라는 거야. 20명의 억만장자를 EPL의 20 클럽에 배정한다고 해도 챔피언은 하나, 실망한 클럽은 열 아홉이겠지. 

할아버지가 내게 어렸을 때 해 주셨던 말이 있지. '100미터 달리기에서 한명은 10.1초에 완주하고, 한명은 10.2초에 완주하던데, 무슨 의미가 있더냐? 둘다 빠른 것인데.' 라고 하셨어. 그래, 둘다 빠르지. 그리고 스포츠의 아름다움이자, 치명적이게 위험한 것이기도 해. 우리는 우승자를 숭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 무슨 방법을 쓰던지, 무슨 자원을 퍼붓던지. 이기는 자가 모든 영광을 누리지. 10년 후, 우린 그 사람이 사실 불공정한 방법을 썼다는 것을 깨닳았어. 당시의 2인자는 이미 잊혀졌지. 고통 받고, 무시 당하고, 받아야 할 영광을 받지 못하기에 불행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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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하하하, 페어플레이를 강조하시는게 정말 영국 신사 같아요.

A. 실토하자면 나도 항상 페어플레이를 해온 건 아니지. 우리 안에는 항상 두 존재가 있어. 승리를 향한 열망, 패배를 향한 증오가 그 둘이지. 가끔은 패배를 향한 증오 덕분에 페어플레이 하기가 힘들 떄도 있었어. 아, 그러고 보니, 자네도 알겠지만 자랑 한번 해야겠군. 아직까지 난 EPL에서 무패우승을 한 유일한 감독이야. 하지만 잉글랜드에는 페어플레이라는 개념이 조금 더 특별하지. 

몇일 전에 럭비 월드컵 보았나? 잉글랜드, 조별리그에서 졌지. 호주팀에게 졌어. 세상에, 자국에서 벌어지는 월드컵인데 얼마나 쓰라렸을까. 얼마나 치욕스러웠을까. 하지만 그들은 호주 팀이 나가는 동안 옆에 서서 그들에게 축하를 보냈지. 그 씁쓸함을 곱씹으면서. 이것이 존중이야. 동시에 스포츠로선 아주 좋은 이미지이기도 하지. 난 일본에 있을때 스모 경기를 꽤 좋아했어. 경기 자체를 좋아했다기 보다는, 경기 끝나고 승자와 패자가 갈릴 때, 승자는 과도하게 기뻐하지 않는다는 거야. 패자가 부끄럽지 않게, 패자가 치욕스러워하지 않게. 난 많은 패배를 당해 왔지. 하지만 여전히 다른 여러 나라들의 반응을 볼 때, 잉글랜드나 일본의 패자를 존중하는 문화는 꽤나 대단하다고 생각해.


Q. 그럼 어떤 면에서 완전한 잉글랜드인이 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래 지내다 보니 잉글랜드는 이제 거의 마음의 조국이지. 예로 잉글랜드 사람들은 감정을 숨기지 않아. "와! 좋다!" 라고 외치는게 다반사지. 프랑스에서 우리의 감정은 우리의 영혼을 감싸는 데카르트의 사상에 항상 숨겨져 있어. 무언가를 정말로, 정말로, 끝없이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르지. 우린 PSG를 좋아해. 하지만..잉글랜드 사람들은 감정을 정말로 자유롭게 표출할 줄 알아. 


Q. 아스날을 거쳐간 선수들도 많고, 많은 선수들은 이후 잉글랜드에 남았습니다. 피레, 비에이라, 앙리처럼요. 그럼 아르센도 런던시민으로 영원토록 남을 겁니까?

A. 사실, 아직 정하지 않았어. 물론 확실한 건 아스날와 나의 연결은 내 마지막 날 까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거지. 몇 번 다른곳에서 이적 제의가 오긴 했는데, 난 항상 거절했어. 이젠 아스날을 떠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고.


Q. 오, 그래요? 확실합니까?

A. 거의 (웃음). 만약 내일 아침 아스날 보드진이 전화를 걸어서 "벵거, 이제까지 고마웠어요. 하지만 우리 헤어져요. 행운을 빌며, 아스날." 이라 말하면 말이야...계속 감독질을 하지 않을거라곤 장담할 수 없겠어. 하지만 확실한건 잉글랜드에선 아냐.


Q. 가르치는 건 어떻습니까? 감독 말구요.

A. 나쁘지 않은 생각이지만, 내겐 가르치려는 의욕보다는 아직 승부욕이 더 강해. 게다가 감독이란 건 둘이 함께 모이는 자리지, 둘이 싸우는 자리가 아니야. 모든 감독은 교육자이기도 하고, 우리 직업의 정말 아름다운 점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 아주 좋은 의미의 영향을 미칠수 있는 거지. 

자네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겠지. 자네도 누군가 자네를 믿고 이끌어 주었기에 이 자리에서 나와 대화를 하고 있어. 아직도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 정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그 희망을, 열정을, 믿음을 심어주지 못했기에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많아. 소망이 있다면, 내가 그 믿음을 심어주는 역활을 하고 싶군. 기회를 주는 사람, 그게 진정한 교육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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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렇다면 경기에서, 상대 벤치에서, 무슨 짓을 하던 결과에만 집착하는 감독을 만나는 건 어떻습니까? 아, 딱히 누구란 건 아니고.

A. '아르센 벵거는 순진하다' 라고 많이 들었지. 뭐, 나는 인생을 사는 방법은 딱 한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해. 자기가 중요시하는 가치를 끝까지 지켜나가는 거지. 내가 지켜온 가치를 의심하는 순간 나는 불행한 사람이 되는 거고. 다행이 무슨 일이 있던 난 항상 내 신념을 지켜 왔어. 좋은 결과도 나쁜 결과도 있었지만.


Q. 알겠습니다. 혹시 아르센의 감독 경력중 가장 기억에 남는 떄가 있나요?

A. 런던에 처음 왔을때, 그리고 의심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지. 첫번째 챔피언십, 첫번째 더블. '이 듣보 누구?' 에서 개척자로. 처음으로 성공한 외국인 감독으로 인정받았을 때. 


Q. 아팠던 경험은요?

A. 모든 패배. 최고의 리그에서 꾸준한 능력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따라붙는 의심. 우리의 노력을,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들. '이제 망했어' 하는 반응들. 사실 감독이란 건 자신이 이룩한 것에 대한 기쁨과, 고통을 감내하고 승화시키는 마조히즘 사이를 위태롭게 걷는 직업이니까. 

그러고 보니, 30년간 감독질 하고 나니 나도 꽤나 마조히스트가 된것 같아. 무슨 욕을 먹어도 이젠 내 신념을 당당히 말할 수 있거든. 요즘들어 날 아프게 하는 짓을 더욱 많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Q. 그래서 언론을 기피하시는 겁니까? 

A. 당연하지. 자네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야! 오늘은 언론에게 50대 정도 맞고 싶은걸!' 라 말하는 등신을 알고 있나?


Q. 알겠습니다. 마지막 질문. 진짜 시계 좋아하나요? 거의 집착증이라던데. 

A. 집착증이 아냐. 내 유일한 기쁨이지. 그 남자의 성격을 설명해줄 수 있는 마법의 아이템이지. 내 첫번째이자 유일한 장식이야. 내가 자라난 마을에선 14살에 대부가 시계를 선물하는게 전통이였지. 아주 정중한 전통이자, 네가 이제 어른이 되었다는 징표이기도 했어. 그때부터 우리 마을은 담배를 펴도 된다고 허락했지. 아버지도 내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한 적은 없고. 왜냐면 다른 어른들과 같이 노동을 할 수 있었으니까. 시골은 원래 그랬어. 사람들이 차고 있는 시계를 보면서 어른이 된 날 상상하곤 했지. 그래서 지금도 끼고 있어. 훈련할 때에는 스포츠 시계를, 오늘 같은 날에는 조금 더 격식 차린 시계를. 내게 하나뿐인 보석이지. 


1차 출처: http://www.sportetstyle.fr/article/people/a,2327,arsene-wenger-l-humaniste.html
2차 출처: http://www.fmkorea.com/252921343#comment_252989674


posted by Fussball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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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스포츠조선)


시작

 내가 일본의 해외축구전문지『월드사커다이제스트』에 기고를 시작했던것은, 유벤투스FC의 감독을 그만둔 이후 충전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있던 2001년 가을이다. 이탈리아 주재 일본인 저널리스트 카타노와 그때마다 설정한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그 내용을 그가 일본어 원고로 정리하는 형태의 공동작업은 그 이후 현재까지 정기적으로 계속되고있다. 이 책은 8년간에 걸친 그 성과를 한권으로 정리한것이다. 따라서, 이 일본어판이 오리지널이며 현시점에서는 유일한 버전이라고 말할수있다.

 공동작업을 시작하고나서 이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나는 AC밀란의 감독으로서 8시즌을 보내며 몇개의 중요한 타이틀을 손에 넣었고 2009년 여름부터는 잉글랜드의 첼시FC로 무대를 옮겨 현재에 이르렀다. 그때 채택했던 화제는 내 축구관과 그것을 기초로한 전술론, 구체적인 시합을 무대로한 케이스데이터, 추가로는 매일매일 쌓여기는 업무의 실제까지, 감독이라는 일의 모든 측면에 미친다.

 그것들을 재차 테마별로 정리한 이 책을 읽게된다면, 카를로 안첼로티라는 감독의 눈에는 피치위의 게임 및 그곳에서 움직이는 선수들을 어떻게 보고있는것인가, 매주 시합을 준비하는가운데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문제에 직면해있는가, 그리고 감독으로서 어떤 커리어를 걸어왔고 어떤 경기를 치뤘으며 어떤 기쁨과 낙담을 경험해왔는지 그 모든것을 그릴 수 있을것이다. 전술이 중요한 측면이라는것에 의심은 없지만 결코 전부는 아니라는것도 알수있을것이라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은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책을 이탈리아에서 현실화하는것은 불가능했다.「국민수와 같을정도의 대표감독이 있다」라고 말할수있을만큼 축구는 이탈리아인의 생활에 침투해있다. 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있는것은 무엇보다도 매주 벌어지는 시합의 결과이며 그것을 둘러싼 모든 종류의 드라마다. 여기서 주제가 되고있는 전술과 지휘, 팀매니지먼트라고 말한 테마를 감독 스스로가 거론한 책은 이탈리아에서는 전혀 찾아볼수없다.

 이것들, 내 일의 중심을 차지하고있는 즉 나 자신이 가장 흥미를 갖고있는 테마를 차분하게 파고들 기회를 얻는것, 그리고 그것을 책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서 일본의 축구팬 여러분에게 읽게할수있게된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그 기회를 준 카와이데쇼보신사(출판사),『월드사커다이제스트』, 그리고 파트너 카타노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하고싶다.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이 책이 축구라는 게임과 그에 관한 전술, 그리고 감독이라는 직업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보다 깊게 즐기는 계기가 되어준다면 그것만큼 기쁜일은 없을것이다.

 덧붙여서, 이 책의 인세의 일부는 밀란과 이탈리아대표에서 내 팀메이트였던 스테파노 보르고노보가 설립한「스테파노 보르고노보재단」에 기부했다. 이 재단은 스테파노 자신도 앓고있는 근위축성측색경화증(학명 루게릭병)의 연구를 원조하는 기금을 모으기위해 설립되었다. 그만이 아닌 몇명의 전 축구선수를 습격한 이 난치병은 원인ㆍ치료법 모두 아직 밝혀지지않았다. 그것의 구명을 조금이라도 빨리 앞당기기위해 힘을 빌려주는것이 가능했으면하고 생각했다.


서장 - 첼시라고하는 도전

서장 1. 밀란에서 첼시로

새로운 도전


 나는 2009년 6월, 01-02시즌 도중부터 햇수로 8시즌에 걸쳐 지휘봉을 잡았던 AC밀란에서의 커리어에 종지부를 찍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첼시FC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8시즌이라는 오랜 기간을 함께 걸어오는동안 밀란에게도 나에게도 지금까지의 일에 하나의 매듭을 짓고 새로운 단계에 들어가야할 시기가 왔다라는 자각이 싹트기 시작하고있었다. 톱레벨의 일을 계속해나가기위해 절대불가결인 자극과 모티베이션의 근원이 떨어져갔다라고 말해도 좋을것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내가 밀란을 떠나려고 생각했던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5-06시즌 종료후에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가계약서에 사인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리고나서 2년후, 즉 2008년 여름에도 첼시의 오퍼를 받고 합의에 이르렀었다. 어느쪽이든 대화가 현실로 이뤄지지못했던것은, 밀란이 나와의 계약해지에 응해주지않았기때문이다. 아드리아노 갈리아니부회장은, 내가 이야기를 꺼낸순간,「그 이상의 이야기는 들을 필요도 없다. 밀란은 당신을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기때문이다」라며 받아들여주지않았던것이다. 나는 2개의 클럽과 합의하는데있어, 밀란이 OK해준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선수시절도 포함해 밀란이라는 가족안에서 오랜시간을 보내온 내게 있어서 자신만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내세우며 계약해지를 요구하며 관계를 무너뜨리면서까지 작별한다는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밀란이 나를 원하는한 계약만료까지 이 클럽에 남아 일을 계속하려고하는 마음은 한번도 흔들린적이 없다. 이전「밀란의 알렉스 퍼거슨이 되고싶다」라고 말했던것도 그런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는 새로운 무대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싶다는 생각도, 막을수없는 매력을 가진 선택지로 계속되어왔다.

 내게 있어 제2의 집이라고 말해야할 밀란에서 가능한한 오래 머무르고싶다라는 마음을 갖고 동시에 새로운 자극과 모티베이션에 대한 갈망 그 둘의 간극사이에서 흔들리고있었다. 그것이 최근 몇년동안의 나였다.

 어쩌면 그것은 밀란도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2009년에 들어와서 첼시에서 재차 오퍼가 있었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때는 과거에 그랬던것처럼 간단히 거절당하지않았기때문이다. 첼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열렬히 나를 원해왔다. 2008-09을 마지막으로 밀란을 떠나는것에대해 최종적으로 합의했던것은 4월말의 일이었다.

 내가 첼시의 오퍼에 매력을 느끼고 그것을 받아들인것은 무엇보다도 이 클럽이 진심으로 나를 영입하고싶어한다는 의지를 꾸준히 보여줬기때문이다. 과거 6시즌동안 5번, 챔피언스리그에서 4강에 진출할정도의 높은 경쟁력을 갖춘 클럽이고 전력적으로도 유럽최고레벨을 꾸준히 유지하고있다. 클럽의 운영조직도 잘 정비되어있다. 그리고 프리미어리그는 전세계에서 가장 레벨이 높고 경제적으로도 번영중인 리그다. 새로운 도전의 무대로서 이것 이상의 장소는 없었다.

 유일한 약점은 커뮤니케이션, 즉 언어의 문제였다. 영어수업은 이전부터 조금씩 받았고 숙달이 빠르다고는 말할수없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했다. 실제로 첼시의 감독으로서 받았던 첫 인터뷰와 최근의 인터뷰를 비교해준다면 내 영어가 조금씩이지만 착실히 진보하고있다는것을 알수있을것이다. 지금은 선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는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않는다.

 첼시의 오퍼를 받아들일 즈음에 물론 로만 아브라모비치회장과도 만나서 대화를 나눴다. 그는 매우 냉정하고 침착한 인물이지만 축구에 거는정열은 매우 강한것이다. 2008년에 처음으로 만났을때부터 나와 그와의 화제는 첼시를 어떤 팀으로 만들어야하는가, 프리미어리그, 그리고 챔피언스리그에서 승리하는 위대한 팀이 되기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라는 그것 하나뿐이라고 말해도 좋을것이다. 그가 첼시의 회장이 된 이후 막대한 자금을 이 클럽에 투자해온것도, 그의 정열과 승리에 대한 끝없는 집념일것이다. 그가 다른 회장과 전혀 다른부분이 있다고한다면, 그것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것을 전혀 좋아하지않는다는것이다. 지금까지 6년동안, 어떤 종류의 인터뷰에도 한번도 응한적이 없다는 사실이 모든것을 말해주고있다.


크게 다른 축구관

 밀란의 감독으로서 마지막 경기가 되었던(파올로 말디니의 은퇴경기이기도했다) 피렌체에서의 피오렌티나전을 마친것이 2009년 5월 31일. 다음날인 6월 1일에는, 첼시가 내 감독취임내정을 발표하며 모든것이 공식화되었다. 그리고 약 1개월의 휴가와 준비기간을 거쳐 런던에서 감독취임기자회견에 임한것이 7월 6일. 여기서 내 잉글랜드에서의 일이 시작되었다.

 잉글랜드의 첫번째 인상을 한가지 말한다면 이탈리아와 비교해서 좀 더 압박이 적고 차분하게 일할수있는 환경이라는것. 사람들이 축구를 어떻게 즐기고있을까, 그것이 이탈리아와는 크게 달랐다.

 우리 이탈리아인은 자신이 서포팅하는 팀의 동향을 마치 자기자신의 문제이기도한것처럼 느끼고, 토론하고, 경기때마다 일희일비한다. 그때문에 팀을 둘러싼 환경(클럽, 서포터, 매스컴)도 감정의 기복이 크고 팀에 거는 프레셔도 크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사람들에게 있어 축구는 하나의 오락이자 엔터테인먼트다. 스타디움에는 그것을 즐기기위해 온다. 그렇기때문에 스타디움의 공기는 이탈리아의 긴박하고 살기등등한 그것과 비교해서 훨씬 부드럽고 밝다. 이탈리아의 서포터에게 있어서는 결과, 즉 승패가 유일한 관심사라고 말해도 좋을정도지만, 잉글랜드의 서포터는 승패이외에 경기 그 자체를 즐긴다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탈리아와 잉글랜드를 비교했을때 가장 큰 차이는 그것, 즉 축구를 둘러싼 외부환경의 차이다. 축구계의 내부에서 일어나는것, 즉 매일의 트레이닝과 경기, 클럽의 조직과 운영에 관해서는 이탈리아도 잉글랜드도 그리고 아마 다른 나라도 큰 차이는 없다. 내가 구체적으로 알고있는 클럽, 즉 밀란과 유벤투스와 첼시를 비교해도 클럽 및 팀의 조직ㆍ운영방식은 거의 일치한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기때문에 첼시에 온 그날부터 나는 아무런 위화감도 없이 자연스레 일을 시작할수있었다.


서장2 - 첼시의 팀컨셉

변함없는 시나리오


 일반론으로 말한다면 어떤 클럽의 지휘봉을 잡았을때 우리 감독이 해야하는것은 그곳에 이미 자리잡은 팀을 재구성해서 보다 좋은 결과를 남기고 보다 높은 목표에 도달할수있는 집단으로 끌어올리는것이다. 감독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축구가 있고, 그것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선수가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없는곳에서 선수를 선택해서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팀을 만들어내는것은 불가능하다. 한명의 감독이 가능한것은 자신의 축구관과 방식와 맡게된 팀의 잠재능력을 조율해서 베스트라고 생각될만한 해결책을 끌어내는것이다.

 그점에서 말하자면 첼시는 개개의 선수의 레벨이 매우 높은데다 팀으로서도 완성되어있다, 말하자면「이미 완성된 팀」이었다. 거기에 내가 해야하는것은 그 팀에 내 나름대로의 색을 첨가하는것으로 그때까지 그다지 끌어내지못했던 잠재능력을 끌어내고 보다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부여하는것이었다.

 새로운 감독이 구체적인 레벨에서 처음으로 해야하는 작업은 어떤 컨셉으로 플레이할지를 정하고 그것에 적합한 시스템을 선택하는것이다. 물론, 그것은 이미 어떤 팀이라는 토대를 기반으로하는것이다. 첼시는 테크닉과 피지컬능력을 겸비한 질이 노은 선수를 보유한 팀이고 지금가지는 그 피지컬적인 측면을 살린 축구, 즉 촘촘한 수비벽을 활용한 프레싱과 신속한 전환(공수전환), 종으로 전개되는 스피디하고 빠른 카운터어택적인 공격이 기본적인 컨셉으로 자리잡아왔다. 4-3-3이라는 시스템도 그런 컨셉을 기본으로한 선택이었다고 말할수있다. 4-3-3은 측면공간을 살려 볼을 종으로 운반하고 상대의 수비진형이 정비되기전에 마무리로 여결하는 속공에 매우 적합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나는 카운터지향의 강한 어그레시브한 팀보다도 볼포제션을 기반으로 경기를 컨트롤하며 주도권을 쥐고 플레이하는 팀쪽을 좋아한다. 첼시 전에 이끌었던 밀란이 그런 팀이었던것은 알고있는대로다.

 나는 밀란을 이끌었을당시부터 첼시에도 그런 컨셉의 축구를 할만큼의 포텐셜이 갖춰져있다고 생각했다. 시스템을 4-3-3에서 4-3-1-2로 변경한 노림수도 거기에 있다. 4-3-1-2는 4-3-3과 비교하면 공격의 폭이라는 점에서는 뒤처지지만 그만큼 미드필더부터 최전방에 걸쳐 피치중앙의 밀도를 높이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볼포제션이 보다 용이할뿐만아니라 피니쉬로 연결되는 골앞의 프레젠스(존재감)도 높아진다.

 물론, 취임당초는 4-3-3을 유지한채 플레이하는 방식도 하나의 선택지로 남겨뒀다. 하지만, 캠프에 들어가서 실제로 팀과 마주하고, 선수들과 대화를 나눠본뒤 4-3-1-2로 시스템을 변경해서 볼포제션을 보다 중시하며 플레이하는 방향성을 즉시 굳혔다. 그들도 그 방향성을 받아들였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자세를 즉시 보여줬기때문이다.

 전력적으로도 이 새로운 포메이션을 실현하기위해 충분한 선수들이 팀에는 갖춰져있었다. 4-3-1-2라고하는 선택은 현재 보유전력의 포텐셜을 끌어내서 보다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부여하기위한 선택이기도했던것이다. 실제로 프리미어리그를 치루며 받았던 인상을 한가지 말하자면 플레이의 리듬은 세리에A와 비교해서 확실히 빠른한편 피치위에는 보다 공간이 있기때문에 전술적인 곤란은 적고 개인능력의 차이가 보다 두드러지기 쉽다라고하는점이려나.

 그러한 점에서 세리에A와 프리미어리그는 축구의 스타일이 다르지만 그것에 맞춰 전술적인 컨셉을 바꿀 필요가 있었냐고 말한다면 답은 No이다. 첼시에 도입한 축구의 컨셉은 지난시즌까지의 밀란의 그것과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않았다. 달라진것은 그것을 플레이하는 선수의 자질과 플레이스타일이다. 말하자면, 같은 시나리오를 다른 배우가 연기하고있는것이다. 시나리오, 즉 나 자신의 축구관과 전술컨셉은 이탈리아에서도 잉글랜드에서도 마찬가지로 통용되는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최종적인 답이 나오는것은 시즌이 끝나고 어떤 결과를 남겼느냐다. 감독의 일을 판단하는 기준은 단 한가지, 결과뿐인것이다.

출처 : Carlo Ancelotti with 片野道郞(KATANO Michio)
번역 : Redondo

posted by Fussball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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