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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04 :: 축구인을 향한 여정 Ep.6 홍콩 그리고 멜번
- 2016.06.01 :: 축구인을 향한 여정 Ep.5 군인정신
그 때 당시 항공권은 편도로 70여만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태어나 생전 처음 가보는 해외라서 요새는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항공권 결제가 무섭기도 했고, 뭐라도 혹시 잘 못 될까 싶어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납니다. 더군다나 그 때는 영어가 컴플렉스였을 정도로 영어를 못하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래도 무슨 깡이었는지 경유지인 홍콩을 여행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어차피 경유하는 거 홍콩 언제 가보겠냐는 마음으로 3박 4일 일정을 짜기 시작합니다. 코즈웨이베이, 몽콕 야시장, 스타의 거리, 빅토리아 피크, 란콰이펑 등 주요 명소들을 위주로 일정을 짜고 숙소는 코즈웨이베이 MTR역 근처에 있는 예스인의 6인실을 잡았는데, 그냥 대충 잡은 것 치고는 꽤나 괜찮은 퀄리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거기서 다행히도 중국 유학 중에 홍콩에 잠깐 여행 온 여자분들을 만났고 이것 저것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영어 벙어리였지만 그 분들은 영어도, 중국어도 잘 해서 여행을 잘 즐기시는 것 같았습니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합니다.
혼자서 하는 첫 해외여행은 신기한 것 투성이에 즐거웠지만 혼자라서 외로웠습니다. 혈기왕성하던 20대 초반, 더군다나 군대 전역하자마자 온 것이라 더욱 사무치더군요... 그래도 그 때는 여행이 마냥 좋았어서 다 잊고 지낼 수 있었습니다. 예산은 숙소비 제외하고 약 25~30만원정도 썼던 것 같네요. 하루에 10만원이 조금 안 되는 꼴이니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보고 싶은 거 다 본 거 치고는 비싸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숙소는 약 1박당 3만원정도 수준이였는데, 항공료가 전혀 안 들었단 셈 치면 국내여행을 조금 호화스럽게 했다는 수준정도인 것 같네요. 여튼 만족스러운 여행이었습니다.
호주, 정확히 말하자면 멜번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멜번을 택한 이유는 도시가 아름답고, 살기 좋으며 한국인들이 대도시치고 상대적으로 적다는 정보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도시가 일자리를 구하기 쉽다고 들었고, 어학원도 잠깐 다닐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선택했고, 그리고 첫 해외생활인데 시골에서 박혀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되든 안 되든 일단 시작은 좋은 도시에서 하고 싶었고, 안 되면 지역이동을 하면 되지 라는 마음가짐으로 멜번을 선정했습니다. 나중에 돌아보니 전 역시 운이 좋은건지 굉장히 좋은 선택이 되었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이쯤 되면 저만 유달리 운이 좋다기 보다는, 어떤 선택을 해도 실패하지 않도록 제가 상황설정을 좀 잘한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이래저래 적응하느라 고생도 좀 했지만 결국에는 목표한 것들을 다 이뤘으니까요.
멜번에 도착한 이후에는 디스커버리 호텔이라는 백팩커에 묵었습니다. 에어컨이 없는 것만 빼고 직원도 친절했고, 가격도 저렴했으며, 조식도 제공해줘서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만, 제가 호주에 거주하는 동안 사장이 바뀌고 시스템이 바뀌어서 그냥 평타치는 수준의 백팩커로 바뀐 것 같더군요. 여튼 제가 멜번에 도착한 것이 3월 10일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3박만 예약을 하고 왔습니다. 현지에 가서 상황을 보고 기간을 연장하면 되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알고 봤더니 3일 뒤에 F1 그랑프리가 개최되는 바람에 멜번시내의 거의 모든 숙소가 만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영어도 못 하고, 아는 사람도 없는 제가 그 정보를 알고 있을리 만무하고 당연히 당분간 묵을 방을 찾는 것은 다시 저의 지상최대의 난제가 되고 맙니다.
게다가 당시 무슨 깡이었는지 노트북도 없이 해외에 나온 저는 일단 중고 노트북부터 마련했고, 호주바다라는 한인커뮤니티와 검트리라는 현지사이트를 열심히 검색하기 시작합니다. 당시에는 생전 처음 혼자 집을 구하는 것이였고 어떤 것이 좋은 집인지, 호주에 사는 한인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디가 좋은 곳인지, 호주 현지인들하고 사는 건 어떨지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걱정투성이에 모르는 것 투성이에 엉망진창이였습니다. 지금의 제가 그 때의 저를 본다면 정말 등신같다라고 여기겠지만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백팩커를 3번이나 옮겨다닌 후에 다락방(?)같은 집을 구하게 됩니다.
외국의 연립주택은 지붕을 뾰족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 맨 꼭대기 층의 방은 방의 절반에서 3분의 1정도의 천장이 비스듬하게 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그 방에 살게 됐는데 약 3x3미터 크기의 방이었는데 천장이 비스듬하다보니 실제로 사용가능한 방의 크기는 1.5x3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방을 다른 남자분과 나눠서 써야 했으니 참 열악했죠. 더군다나 카펫은 언제 마지막으로 청소를 한 건지 알 수 없을만큼 더러웠습니다. 하지만 백팩커에 오래 있다보니 숙소비가 만만치 않아서 빠른 선택이 필요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시내의 한복판에 위치해서 꽤 유명한 공과대학 RMIT의 캠퍼스가 바로 건너 편에 있었고, 농구장을 이용하기에 편리했고, 주립도서관, 지하철 역, 대형마트 등이 가까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열악한 집이 위치만 좋다고 해서 방세가 당시 환율 적용해서 한 달에 55만원정도였으니(2인1실 쉐어) 어마어마한 방값이지요.
물론 2존에서 3존 정도로 나가게 되면 같은 값에 꽤 괜찮은 퀄리티의 독방을 쓸 수 있는데, 달마다 사용해야 하는 교통비도 만만치 않은 데다 시내로 왔다갔다 해야 되는 시간도 무시할 수가 없어서 위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역시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선택하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긴 합니다만...
아, 백팩커에 머무는 동안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다음 Ep.7에서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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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부터 제 여정에 대해서 좀 더 디테일하게 적어볼 예정입니다. 글솜씨가 부족해 좀 지루하거나 늘어질 수도 있으니 양해부탁드립니다.
추위가 시작되는 10월 말, 저는 군대를 전역했습니다. 바로 학교를 복학할 수도 있었지만, 저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호언장담을 해놓았던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갈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군대에서부터 쥐꼬리만한 월급을 조금씩 모아서 약 70만원 정도를 모아서 나왔으나, 전역축하파티며 그 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다 보니 1주일만에 다 써버리고 말았죠. 그래도 서울 쪽에서 학교 친구들은 거진 모두 만났었고 이제 고향에 내려가서 고향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어렸을 때부터 같은 고향 가까운 곳에 살면서 저를 아들처럼 챙겨주셨던 친척분이 한우집을 운영하시는데 내려와서 일을 도와달라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저에겐 최상의 시나리오였습니다. 3개월 정도 후에 호주로 출국할 계획이었고 최대한 초기정착자금을 많이 모아서 갔어야 했기 때문이죠. 숙식제공이었어서 받는 월급은 거의 모조리 세이빙을 할 수 있었죠. 거기에서 머물며 고향 친구들과 간만에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던 건 덤이었죠.
하지만 생각만큼 일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친척분이 가게의 거의 모든 운영을 한순간에 저에게 맡겨버리신 탓에 저는 군대보다도 더 빡센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제 갓 군대를 전역하고 식당운영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까까머리 군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매니저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종업원들의 반발 아닌 반발도 있었고, 식료품을 공급받는 업체들과의 가격협상과 기타 협력에 있어 나이 때문에 받는 불이익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종업원들의 정기휴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예전과는 달리 다들 이기적으로 행동했고, 저의 중재를 무시하고 저의 친척인 사장님과 직접 의논하려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저는 나름 친척분이 저를 믿고 맡기신 일인데 자꾸 일을 해결 못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종종 갈등이 생기기도 했었죠. 거래처 사장님은 너가 어려서 모르는 거다는 식으로 저에게 바가지를 씌우신 일도 종종 있고, 배송우선순위에서 자꾸 밀려나기도 했습니다. 안 그래도 일이 서툴러 주문이 잘 못 들어간 경우도 왕왕 있었는데, 일장훈계를 듣는 건 예사였습니다. 세세한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일개 직원이 아닌 매니저로서 식당을 운영해나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해보신 분들은 다들 아실겁니다. 인수인계란 건 없었고 처음부터 다 부딪히며 알아갔습니다.
제 성격상 대충 일을 처리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매일 12시간 이상씩 3개월동안 휴일은 단 2일. 신정과 구정 등이 껴 있었지만 식당일을 하느라 쉬지 못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식당주변청소, 새벽에 배송된 식재료 점검, 창고정리하며 부족한 식재료 점검, 예약점검, 기타 무거운 물건들 옮기는 건 모두 제 몫이었습니다. 식당운영시간엔 거의 계산대에서 계산을 위주로 하고, 바쁠 때는 서빙, 정육점에서 고기손질까지 도맡아 하며 멀티플레이어로 거듭납니다. 구정 때는 500포기가 넘는 김장을 돕느라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김장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알았으면 어머니께 김치투정따위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3일을 꼬박 김장을 하고 나니 군대를 다시 가는 것만큼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되더군요.
여튼 다사다난한 3개월을 마치고 나니 저는 식당운영을 꽤나 잘하는 젊은 요식업계의 떠오르는 샛별(?)이 되었고, 김장도 할 줄 아는 한국의 신남성이 되었으며, 소고기를 부위별로 손질할 줄도 아는 기술자가 되었고, 무엇보다도 호주로 떠날 자금을 차고 넘치게 모았습니다. 통 크게 100만원어치의 최상급 A++한우를 친척들과 가족들에게 선물로 투척하고 전 호주로 향하는 비행기티켓을 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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